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이먼 앤 가펑클 (문단 편집) == 활동 내역 == 10살 때부터 친구였던 [[폴 사이먼]]과 아트 가펑클은 고교 시절, [[1957년]]부터 [[톰과 제리]][* 잘 알려진 [[애니메이션]] 톰과 제리에서 따온 거 맞다.]라는 듀오로 활동했으나, 'Hey, Schoolgirl'이 히트한 이후로 실적이 저조해 잠시 팀을 해체했다 ~~톰과 제리라는 팀명을 보면 실적이 저조할 만도 하다...~~. [[1964년]] 사이먼 앤 가펑클이란 이름으로 다시 뭉쳐 데뷔앨범 "Wednesday Morning, 3 A.M."을 발매했으나, 성적은 여전히 시원찮았고 결국 팀은 다시 해체되었다. 그러던 중 위의 1집에 수록된 "[[The Sound Of Silence]]"가 라디오 방송을 통해서 입소문이 퍼져 슬금슬금 [[역주행(노래 용어)|역주행 파워]]를 보이기 시작하자, 음반사에서는 프로듀서 톰 윌슨을 다시 불러 전기 기타와 드럼을 입힌 리믹스 버전을 만들었다.[* 참고로 이 버전에 동원된 세션들은 모두 [[밥 딜런]]의 [[Like a Rolling Stone]]에 참여했던 사람들이다. 아닌게 아니라 Like a Rolling Stone 녹음이 끝난 뒤에 바로 연주했다고(...)] 이 버전은 좋은 성적을 거두었고, [* 다만 폴 사이먼과 아트 가펑클 두 사람 모두 리믹스 버전이 발표된 이후에야 자신들의 노래가 리믹스 된 것을 알게 되었다고.] [[영국]]에 있던 폴 사이먼은 다시 [[미국]]으로 건너와 아트 가펑클과 재결합, 아예 "The Sound Of Silence"라는 이름으로 2집을 발표한다. 이 음반은 나름대로 성공을 거두었으며 3집 "Parsley, Sage, Rosemary and Thyme"을 통해 이들을 큰 인기를 거두었다. 이즈음 이들은 영화 [[졸업]]의 사운드트랙을 담당했는데 이 중 [[Mrs. Robinson]]은 빌보드 1위는 물론 엄청난 대박을 친다.[* 영화 속 최고의 명곡을 뽑을때 항상 거론된다. AFI 선정 역사상 최고의 영화 노래 100곡 중 #6위로 뽑혔기도 하다. 가사 중 Where have you gone, Joe DiMaggio? 행으로도 유명한데, 사실 [[조 디마지오]]는 자신이 비록 은퇴는 했어도 아직 살아있다며 언짢은 반응이었지만 이 곡 때문에 당시 젊은층이던 [[전후세대|베이비 붐]] 세대에게 다시한번 아이콘으로 부상한다.] 그러나 폴 사이먼과 아트 가펑클은 가고자 하는 음악적 방향이 달랐으며 서로의 성격 차이 때문에 불화도 심해졌다. 워커홀릭인 폴 사이먼 덕에 아티는 항상 쉴 틈이 없다고 불편해 했고, 결정적으로 폴 사이먼 본인이 혼자서 노래 쓰고 부르는 것도 참 잘했다. ~~혼자서도 잘해요~~ 아티가 영화배우 일 때문에 가수업에 등한시한 이유도 있다.[* 폴 사이먼은 이에 대해 불만이 엄청 많았다고 한다. 폴 사이먼은 아트 가펑클이 보컬로서의 재능은 자신을 아득히 능가한다고 인정했기에 폴 사이먼 입장에서 아트 가펑클의 영화배우 활동은 재능낭비였던 셈. 무엇보다 폴은 아티의 목소리를 사랑했다.] 둘 사이가 한창 좋지 않았을 땐 듀오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녹음실에서 녹음을 하거나, 파트를 나눠 녹음한 뒤에도 폴이 아티의 파트를 없애버리고 자신이 다시 부를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. 결국 [[1970년]] 5집 "[[Bridge Over Troubled Water]]"를 발매한 후 팀은 해체하게 된다. 수록곡 So Long, [[프랭크 로이드 라이트|Frank Lloyd Wright]]는 여러모로 사이먼과 가펑클이 서로 헤어질거라는 암시와 작별 인사를 담고 있는 곡이다. 해체 이후에도 자선 사업 등을 위해서 마음을 맞추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 중에서도 [[뉴욕]] [[센트럴 파크]] 공연은 아예 이날의 공연이 녹음되어 음반으로 발매될 정도로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. 요즘도 가끔씩 공연을 한다. 환갑, 칠순을 지나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아직 팔팔하시다. 다만 [[2010년]] 이후로는 공연이 없는 상태. 해체의 이유에 여러가지 말이 나오는 건 당연하지만, 결국 서로 간의 반목이다. 둘 다 능력이 워낙에 뛰어나고, 아웅다웅하다보니 그럴 수 밖에. 더구나 듀엣이고. 당시가 아니라 현대라면 둘 다 성공했겠지만, 당시 상황에선 어림 없었기에 끝까지 싸우다 끝난 것으로 보인다. 둘은 해체 후에도 각자 솔로 커리어를 이어 나갔는데, 대체로 폴의 솔로 커리어가 더 뛰어나다는 평을 받는다.[* 아트의 경우 음악에만 치중되지 않아 시집도 내고 연기도 하고 있다. ] 가펑클의 미성과 가창력이야 빼어나지만 작곡 능력은 거의 없는 데 비해, 폴 사이먼은 사이먼 앤 가펑클의 아름다운 멜로디를 대부분 작곡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수도.[* 물론 가펑클 역시 Breakaway 같이 커버 곡 및 타 작곡가들의 곡을 받아 수작 음반을 만들어낸 경우가 꽤 있다.] 특히, 폴 사이먼의 셀프 타이틀 앨범 과 <[[Graceland]]>는 거의 대부분의 명반 리스트에 포함되곤 하는 뛰어난 명반이다. 그의 작곡 능력은 솔로 아티스트 자격으로 [[로큰롤 명예의 전당]]에 재입성한 것으로 설명이 끝난다.[* 즉 듀오 시절을 포함해서 2번 입성한 것.] [[2016년]] 인터뷰에서도 재결합 공연에 대해서 부정적인 반응이 나왔다. 정확히는 아트 가펑클은 하고 싶어하는 눈치지만, 폴 사이먼은 서로 그렇게까지 잘 어울리지 않는다면서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였다. [[폴 사이먼]]은 특별히 사생활에 있어 문제를 일으킨 적도 없으며,[* [[이혼]] 등 개인사의 굴곡이 있긴 했지만 한국과는 달리 개인주의가 팽배한 미국은 사생활에 대해 크게 문제삼지는 않는다.] 최근 들어서는 [[의료보험]] 개선 캠페인 참여와 반전운동 참여 등 각종 사회운동으로 인기가 높다. [[2009년]] 말에는 [[버클리 음대]] 이사가 되었다. 다만 아트 가펑클의 경우 몇년 전 [[마약]] 복용 문제로 구설수에 오르는 등 주위를 안타깝게 한적이 있다. [[2000년]] [[10월 5일]] ASEM 기념 평화 음악회에 아트가펑클이 게스트 참여를 위해 내한한 적이 있다. [[2015년]] [[2월 14일]]에 아트 가펑클의 내한 공연이 있었다. [[http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SD&mid=sec&sid1=106&oid=312&aid=0000067319|아트 가펑클은 오는 2월 ‘롯데카드 무브(MOOV) : 아트 가펑클 인 서울’을 통해 처음으로 한국을 찾는다.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